10월 27일 오전, 리커창 전 중국 총리의 부고 소식이 전해져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졌다. 리커창은 2013년 3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무원 총리로 임명되어 이로부터 10년간 중국 경제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소신과 당당한 행보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아왔지만, 시진핑 국가 주석의 독보적인 지위 구축으로 인해 점점 그의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1958년 안후이성에서 태어난 리커창은 정치적으로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 주석과 동일한 공산주의청년단 계열에 속해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리틀 후"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성장 배경은 당 간부의 집안이었으나,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고향에서 농촌 체험을 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에는 베이징대 법학과에 입학하여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공산주의청년단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그는 비슷한 나이대의 다른 이들보다 먼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태자당(혁명 원로 자제 그룹)과 상하이방(장쩌민 계열)이 연합해 지지한 시진핑이 국가의 1인자 자리를 차지한 가운데, 리커창은 국무원 총리, 즉 2인자의 자리를 맡게 되었다.
총리로 임명된 직후 많은 이들은 그가 실세 총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집단지도체제가 약화되고 시진핑의 1인 권력이 강화되면서 그의 영향력도 함께 약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총리 재직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절대 권력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2020년 5월 전인대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이 대표적인 예이다.
당시 그는 중국 내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하며, "6억 명의 중국인들이 월수입이 겨우 1000위안(약 17만원)에 불과하다. 이들에게 집세를 내는 것조차 버거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당시 시진핑 주석이 강조하던 '샤오캉' 사회 건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이었기에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이러한 비판적인 목소리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계속되었다. 리커창은 방역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정책이 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국 화상회의를 열어 10만 명이 넘는 공직자들 앞에서 중국의 경제 상황이 2020년 우한 사태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에서는 리커창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주장하는 시진핑에 맞서며 중국 정가 내에서 권력 암투가 일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켜보았지만, 결국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리커창은 지난 3월 퇴임을 앞두고 국무원 판공청 직원들과의 작별 인사에서 "인간이 하는 일은 하늘이 지켜보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 문구는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유비 사후 8번째 북벌에 나서면서 남긴 말로 알려져 있으며,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그가 중국 최고 지도부의 무소불위 권력에 대한 견제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했다.
이 발언은 중국의 엄격한 인터넷 검열 시스템을 통과하지 못해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차단되었지만, 해외 SNS를 통해 널리 확산되었다.
또한, 지난해 20차 당 대회 폐막식에서 벌어진 후진타오 전 주석의 갑작스러운 퇴장 장면도 많은 이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냈다.
당시 리커창은 후진타오의 옆에 앉아 있었고, 후진타오가 떠나면서 그에게 속삭이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그가 시진핑과의 권력 다툼에 관여되어 있을 수 있다는 추측도 나왔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후, 중국 정부는 공식적인 추모식을 열어 그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부고가 알려진 직후 중국의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웨이보에서는 그에 대한 애도의 글과 함께 비판적인 목소리도 함께 나타났다.
많은 이들이 그가 생전에 보여준 절대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와 중국 사회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것을 기리며, 그의 죽음이 중국 사회에 큰 손실이라고 평가하고 있다.